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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가 엇갈리는 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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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가 엇갈리는 명성황후
평가가 엇갈리는 명성황후 1 평가가 엇갈리는 명성황후 명성황후(明成皇后)처럼 양 극단의 평판을 가진 사람도 없다. 황현(黃玹)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명성황후에 대해서 ‘씀씀이에 도무지 절도가 없어서 흥선대원군이 10년 동안 쌓아둔 돈이 모두 동이 났고 이로부터 매관매직의 폐단이 시작되었다’고 매우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일찍이 조선을 방문하여 명성황후를 직접 만난 바 있는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그의 저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에서 그녀에 대해 ‘대화 내용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 눈부신 지성미로 얼굴이 빛나는 지식인이자 우아한 자태를 가진 귀부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는 생존했던 당시에도 이렇게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사망한 후에도 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친정 식구들을 끌어들여서 권력을 독점하였으며 결국 나라를 그르친 인물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일제의 침략 앞에 희생된 조선의 국모(國母)라는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명성황후의 진정한 모습은 그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것입니다. 2 ‘민비(閔妃)’라고 불린 이유 명성황후는 1851년 9월 25일 여주(驪州) 근동면(近東面) 섬낙리(蟾樂里) 사제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여흥(驪興)입니다. 아버지는 민치록(閔致祿)이며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생부인 민유중(閔維重)의 후손입니다. 1866년 16세의 나이로 왕비에 간택되어 운현궁에서 고종과 가례를 올렸습니다. 명성황후 대신 널리 쓰인 호칭으로 민비(閔妃)를 들 수 있습니다. 민씨(閔氏)의 성을 가진 왕비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민비라는 호칭도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인현왕후를 비롯하여 민씨 성을 가진 왕비가 여럿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 민비(閔妃)라는 용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 공식적으로 쓰인 용어가 아닌 셈입니다. 『매천야록』을 비롯하여 자료들을 살펴보아도 민비란 용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들 자료에서는 대부분 ‘왕후(王后)’, ‘중궁(中宮)’, ‘중전(中殿)’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중궁민씨(中宮閔氏)’처럼 민씨를 뒤에 붙이는 경우는 있지만 민비(閔妃)처럼 성을 앞세우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 1920년 7월 10일자 『매일신보』는 돌아가신 이태왕 전하의 존호를 고종태황제로 올리면서 민비전하의 호칭도 명성황후로 승격시키기로 일본 궁내성이 내정했다고 보도하였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제는 명칭을 민비로 격하하였다가 명성황후로 원위치 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후로도 격하시킨 명칭만이 그대로 통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민비는 별로 기분 좋은 호칭이 아닌 셈입니다. 3 고종의 정치적 참모이자 동반자 명성황후는 1873년 고종이 직접 나라의 정사를 돌보는 친정(親政)을 시작한 후 자신의 친정붙이들과 함께 막강한 정치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친족을 민씨 척족(戚族)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들의 권력을 과거 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세도권력에 비겨서 여흥 민씨(驪興閔氏) 세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그녀가 남편인 고종을 제치고 국정을 주도한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여흥 민씨들이 출세하여 고관대작을 독차지한 점을 보면 과거 안동 김씨 때와 비슷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과거 안동 김씨 시절에는 왕비의 친정아버지가 국왕의 정치적 후견인(國舅)으로서 권력을 대신 행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왕비가 되었을 무렵 친정아버지인 민치록은 이미 사망한 뒤였습니다. 이 점은 국혼(國婚)을 추진한 흥선대원군도 염두에 두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여흥 민씨에게는 국왕을 압도할 만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고종은 과거 안동 김씨 시절과는 달리 정치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성황후가 개인적으로 국정에 상당부분 관여했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공식 사료에서는 그녀의 활동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매천야 록』을 비롯한 여러 야사에는 그녀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녀가 상당한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임오군란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야사의 기록은 약간은 새겨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은 신성불가침한 존재였습니다. 국왕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 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고종이 무능한 군주였다는 이미지 즉 고종암군설(暗君說)은 일제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습니다. 고종이 친정 초기부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통치행위 를 하였다는 연구 성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모두 고려한다면 명성황후는 고종을 제치고 국정을 주도했다기보다는 고종의 정치적 참모이자 동반자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입니다. 고종 스스로도 주요한 정치적 사안마다 명성황후의 의견을 청취했음을 밝힌 바 있습니다. 4 흥선대원군과의 운명적 대결 명성황후의 일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흥선대원군이다. 그녀의 일생은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의 대결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그녀와 흥선대원군이 직접 충돌한 큰 사건을 추리면 임오군란(壬午軍亂), 갑오개혁, 을미사변을 들 수 있습니다. 1882년에 일어난 임오군란은 군인들이 일으킨 폭동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운현궁에 방문하고 난 뒤 더욱 행동이 과격해졌습니다. 군인 들은 궁궐을 습격하고 왕비를 해치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이 심복으로 하여금 군복으로 갈아입고 군중들을 이끌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명성황후는 무예별감 홍재희(洪在羲)의 등에 업혀 궁궐을 탈출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왕비가 이미 죽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청군의 개입으로 흥선대원군의 재집권 시도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피신했던 명성황후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두 사람간의 극한적 대립을 보여줍니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두 번째 충돌은 1894년에 6월 21일에 있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할 때 함께 입궐하였으며 국정을 총괄하는 일종의 섭정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흥선대원군이 물리력을 직접 장악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명성황후를 해치지는 못했지만 폐비만은 기어코 관철하려 하였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입궐한 바로 다음날 이러한 취지를 담은 문건을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 일본공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때 일본의 반응이 미온적이어서 이를 성사시키지는 못했고 본인도 뒤에 일본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결국 실각하고 말았습니다. 2013년 명성황후가 을미사변 당시 궁에서 도망쳐 다른곳에서 생존했다는는 추정 외국 외교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명성황후 생존설 추정 기사 출처 https://www.etoday.co.kr/news/view/75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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