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께서 중환자실에 들어가셨습니다. 외래진료 때 뵈었던 호흡기내과 담당교수의 말씀으로는 소생 확률 10~20%라고 했습니다.
그냥,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고, 마음이 답답해서 씁니다, 답답해서.
세 줄 요약
① 70세 어머니가 오래된 폐질환의 악화로 수개월간 힘드셨다. 그리고 치료에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② 의료진은 소생 가능성을 10~20%로 설명했고, 인공호흡기와 배액관 삽입 등 처치를 시행했지만, 본인은 연명치료를 원치 않으며, 가족들은 어려운 결정을 마주하게 됐다.
③ 글쓴이는 중환자실에서의 면회 이후 무력감을 느꼈다.
저희 어머니는 올해로 딱 70살이 되셨습니다. 여수 출신이신데, 뭐 때문인지 몰라도 고등학생 때 ‘늑막염’으로 폐에서 고름인가 물인가를 잔뜩 빼냈다고 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치료는 아니었을 거라고 봅니다. ‘늑막염’이 정확한 병명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이후, 뭐 건강에 큰 문제없이 그럭저럭 잘 사셨습니다. 감기 등에 좀 취약하시긴 했는데, 그게 고교 시절 앓은 늑막염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몸이 원래 좀 약한 탓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걸 닮은 건지 겉보기엔 졸라 튼튼해 뵈는데, 다른 데는 아무 문제는 없는데, 감기를 남들보다 좀 쉽게 앓곤 합니다. 유전적 요인에 의해 폐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고, 저도 그냥 좀 잔병치레가 좀 많았습니다. 담배 한 20년 피우다 끊었는데도 건강검진 해보면 폐는 깨끗하다 하더라고요.
약 6년 전쯤 잦은 기침과 객혈 증상이 발현되어 K대병원에 갔습니다. 어려서 문제 있던 때문인지 좌측 폐의 섬유화가 진행되어 거의 사용 못하는 상태라고 잘라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환갑 넘은 입장에서 폐 잘라내자고 하니까 무서우셨겠죠. 그래서 다시 S대병원으로 가셨나 봅니다. 나이도 많고, 수술 어려울 수 있으니까 항생제로 다스려보자고 했답니다. 한동안 병원 열심히 다니셨고, 완치는 아니지만 객혈 증상은 사라졌습니다. 잦았던 기침도 사라졌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셨지요. 이후, S대병원에서 1년에 한 번씩 폐와 관련된 검진은 꼭 받으셨습니다.
그러고 올해 4월.
좀 활동적인 분이긴 했거든요. 고향땅 여수를 무슨 지역구 국회의원만큼이나 자주 찾으셨습니다. 어릴 적 죽마고우들과 함께. 여행도 고된 일이지요. 덕분에 한동안 무리한 탓인지 기침과 객혈 증상이 또다시 동반되어 찾아왔습니다. S대병원에서는 기관지내시경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한 것입니다만, 검사결과지에 내시경 과정 중 문제 있던 좌측 폐에서 고름이 많이 빠져 나왔고, 맑은 피 또한 꽤 많이 쏟아져 나왔다 적혀 있었습니다. 피를 쏟으며 산소포화도가 낮아져 검사는 종료되었다고도 기록돼 있었습니다. 의료지식 없는 제가 뭘 아나요? 검사결과지 한 장, 한 장 스캔 떠서 제미나이, 클로드, 챗지피티 돌리니까 설명해 주더라고요.
그제서야 제대로 된 병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⑴ 기관지-흉막루 (영문: Bronchopleural Fistula / 약어: BPF)
⑵ 만성 농흉 (영문: Chronic Empyema)
그리고, 그날 이후 중환자실 입원 직전인 어제까지 기침과 객혈 증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4월 말경, 기관지내시경 이후 모친께선 기침이 심해져 잠을 못 잤습니다. 눕지도 못 했습니다. 눕지 못 하니, 다리가 부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엔 온몸이 부었습니다. S대병원에서는 검사 결과 큰 문제없다고 항생제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다시금 외래를 잡아 내원하면 기관지확장제를 추가 처방할 뿐이었습니다. 증상이 심해져 응급실에 와야 될 것 같다면 객혈해놓은 피가래를 컵이나 봉지에 담아 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래야 응급실에서 받아줄 거라면서.
잠을 약 한 달 가까이 제대로 못 주무셨을 때엔 헛것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속된 말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답답하더군요.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경기 북부의 모처에 삽니다. 이곳에 있는 E대학병원에 가보기로 합니다. S대병원에서의 검사결과지, CT촬영 CD를 발급받아 갔습니다. E대학병원의 호흡기내과 교수께서도 수술은 회의적이라 말합니다. S대병원에서 쓰던 항생제가 효과 없는 것 같으니, 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써보자고 말합니다. 잠 좀 잘 수 있도록 약이라도 써달라고, 입원이라도 시켜달라고 하니까 입원해도 달리 해줄 게 없답니다. 마약성 진해제로 우선 잠이라도 잘 수 있게 하는 게 최선이라고 합니다. ‘코데인’이란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약 3주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코데인을 복용할 때만 잠깐 괜찮아집니다. 그런데 이 약의 영향 때문인지 또다시 치매 같은 증상을 보입니다. 잠을 못 자서 헛소리 할 때와는 좀 다른 패턴입니다. 독한 약 때문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병세가 호전되기 바랐으나 이젠 결국 코데인조차 효과가 없어졌습니다. 이젠 마약에도 기침이 멈추지 않습니다. 두 달가량 지속된 밤낮 없는, 쉴 새 없는 기침소리에 동거인인 아버지 멘탈이 깨져 있는 듯했습니다. 약간 층간소음에 오래 시달린 사람처럼 돼 버렸더라고요.
그러고는 어제 오전 11시 40분경, E대학병원의 응급실에 들어가셨습니다.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는 환자 본인에게 연명치료 동의 여부를 여쭸답니다. 모친은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답했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대로 숨이라도 쉬게, 제대로 좀 잠이라도 잘 수 있게, 입원해서 제대로 된 검사라도 다시 한번 받게 하자는 마음으로 인공호흡기를 다는 데에, 좌측 가슴에 구멍을 뚫어 폐의 고름을 빼내는 데에까지 동의하셨다고 합니다.
외래진료 때 만났던 담당교수가 찾아와서는 인공호흡기를 직접 달며 소생 확률 10~20%를 말합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겠다면서. 살게 되어도 일상으로의 복귀는 어렵고, 평생 옆구리에 구멍을 뚫어 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했답니다.
또 다른 의사가 찾아와서는 아버지께 오래 누워 있다 보면 배우자의 신장이 망가질 텐데, 투석에 동의하겠느냐 여쭸답니다. 쇼크가 발생할 경우, CPR에도 동의하는지 여쭸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답니다. 모친께선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아무튼, 환자 본인은 단 한 가지의 연명치료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부친께서는 현재 상황을 알리러 그제 저녁때쯤 저희 집에 오셨습니다. 한 10년은 늙어 보이더라고요. 제 처와 자식에게 자리를 좀 비켜 달라 하고는 응급실에서의 상황에 대하여 말해 주셨습니다. 부친께서도 70 넘은 노인이라 제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한 게 맞는지 좀 못 미더워서 E대학병원 중환자실 직통번호로 전화를 해 봅니다. 뭐 특별한 설명은 없었습니다. 내일(12일) 직계가족은 30분간 면회 가능하니까 와서 직접 보고 설명 들으라고.
처와 자식은 처가에 보냈습니다. 애가 3살인데, 이 상황에서 주말을 함께 보내기가 좀 힘들겠더라고요. 면회 가는 길에 가슴이 답답해서 죽마고우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전했더니, 이놈이 반차 내고 압구정동 회사에서 경기 북부까지 한달음에 와주었습디다. 고마웠습니다.
중환자실 면회 절차는 번거로웠습니다. 날도 더워 죽겠는데, 마스크에 1회용 비닐장갑까지. 물론, 이해합니다. 감염 위험 있으니 절차는 잘 따라야죠. 다른 면회객들은 능수능란했습니다. 혼자 어리버리 하고 있으니까 간호사로 보이는 분께서 저를 어머니 곁으로 안내해 줬습니다. 불효자라 욕하셔도 할 말 없습니다만, 아무것도 못 하고 오래 누워 계시느니 차라리 일찍 돌아가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막상 이것저것 의료기기 주렁주렁 달고 누워 계신 엄마 모습 보니까 그냥 무너지더라고요. 40대 중반 남자가 중환자실에 서서 펑펑 울었습니다.
근데 저만 울더라고요. 다들 경력직(…)이셔서 그러는지 더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환자들 곁에서도 그냥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여지껏 잘 울어본 적도 없는데, 사람들 많은 데서 울어가지고.
면회 시간은 딱 30분이었는데, 26분 동안 잠든 모친의 상태를 곁에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곁을 서성이던 젊은 의사분께 “계속 잠만 자는 상태이냐?” 여쭈니, 의식 있을 때도 있는데, 재우는 이유는 환자가 자꾸 의료기기를 몸에서 빼길 원한다며 발버둥을 쳐서 팔을 다 묶어놨다고 했습니다. 이제 면회 시간이 4분 남았는데, 그제서야 번뜩 눈을 뜨셔서는 저를 보고 엄마는 웁니다. 나도 웁니다. 입에 뭐가 꽂혀 있어 말은 못 하시는데, 모든 제스처가 이 의료기기들을 제거해 달라는 듯했습니다. 본인은 단 하나의 연명치료에도 동의하지 않겠다 했다는 그 말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뭐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겠습니까? 두 달 동안 잠 못 주무셨으니, 약에 의존해서라도 편히 좀 주무시라고, 너무 걱정 말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면회 때 또 오겠노라고,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라 말했습니다. 면회 시간 끝났다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또 질질 짰습니다.
멀리까지 찾아온 친구에게 커피 한잔 대접하고 헤어졌습니다. 친구는 12살 때 저희 어머니가 “곽철용이(글쓴이)가 그러던데, 너 ○○이 좋아한다며? 꽃이라도 사줘.”라고 말씀하시면서 용돈을 주셨던 그날 기억이 나가지고, 일이 손에 안 잡혀 병원까지 무작정 찾아왔다면서 지가 더 질질 짰습니다.
담배 끊은 지 한참 됐는데, 한 갑 사갖고는 아파트 흡연실에 앉아서 반 갑 정도 피우고 귀가했습니다. 하루 반나절을 굶었더니, 속이 쓰려서 초코바 하나 사먹었습니다.
답답합니다. 뭘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그냥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이라도 해봅니다. 혼자 집에 우두커니 앉아 있자니 안 되겠어서 동네라도 한 바퀴 뛰고 와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