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냐니 스타일의 '서주와 알레그로'
마르티니 스타일의 '안단티노'
프랑쾨르 스타일의 '시칠리아노와 리고동'
비발디 스타일의 '바이올린 협주곡 C장조'
쿠프랭 스타일의 '루이 13세 노래와 파반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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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의 거장 프리츠 크라이슬러가 저 곡들을 발표할 당시에는 '작곡가 푸냐니, 마르티니' 등의 잊혀진 곡을 발견했다~ 해서 엄청 유명세를 탔는데,
수십 년 뒤에 그게 아니고 다 자기가 작곡한 곡들이라 실토하는 바람에 전 세계 악보 출판사들이 제목을 다 바꿔서 새로 출판하는 소동이 벌어졌죠.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저 당시에는 그래도 곡은 좋다 하며 넘어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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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내 이름으로 내면 아무도 안 들어!"
20세기 초, 크라이슬러는 이미 대단한 명성을 떨치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그는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재능이 많아서 짧고 매력적인 바이올린 소품들을 직접 쓰곤 했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당시 음악계는 비발디, 바흐, 쿠프랭 같은
'과거 옛 거장들의 음악'을 칭송하고, 동시대 연주자가 앙코르곡으로 직접 쓴 가벼운 소품곡은 낮게 평가하는 분위기
가 만연해 있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거 제가 썼습니다" 하고 발표하면 평론가들이 "에이, 가볍네"라며 트집을 잡겠지?'
그래서 그는 기막힌 잔머리(?)를 굴리게 됩니다.
자신이 쓴 곡을 17~18세기 고전 작곡가들이 쓴 미발표 악보인 것처럼 속여서 발표하기로 한 것이죠.
완벽했던 연기: "수도원에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단순히 이름만 빌린 게 아니었습니다. 사기(?), 아니 마케팅의 디테일이 엄청났죠.
치밀한 가짜 세계관 구축:
그는 사람들에게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등의 오래된 수도원을 뒤지다가, 먼지 쌓인 서랍 속에서 옛 거장들의 미공개 친필 악보를 기적적으로 발견했다"*라며 썰을 풀었습니다.
거장들의 이름 도용:
가에타노 푸냐니, 루이 쿠프랭, 파드레 마르티니, 카를 디터스 폰 디터스도르프 등 당시 대중에게 이름은 알려졌지만 악보는 구하기 힘들었던 옛 작곡가들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습니다.
진짜 같은 가짜 악보:
심지어 악보를 출판할 때도 '크라이슬러 편곡'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원곡이 진짜 따로 있고 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에 맞게 편곡만 한 줄 알았죠.
결과는
대성공
이었습니다. 평론가들은 "역시 고전 거장들의 우아함과 깊이는 따라갈 수가 없다", "이런 보물을 발굴해 낸 크라이슬러는 대단하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곡들은 연주회 때마다 앙코르 요청이 쇄도하며 엄청난 히트를 쳤습니다.
30년 만에 터진 폭탄선언: "사실 다 내가 썼지롱"
이 완벽한 연극은 무려
30년 동안
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1935년, 뉴욕 타임스의 음악 평론가였던 올린 다운스(Olin Downes)가 크라이슬러가 발굴했다는 '푸냐니의 서정적 안단테'의 원본 출처를 추적하다가 수상함을 감지하고 크라이슬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크라이슬러는 자신의 60세 생일을 맞아 쿨하게 진실을 고백하는 전보를 보냅니다.
"그거 전부 다 제가 작곡한 겁니다."
크라이슬러가 고백한 '가짜 고전 음악' 리스트에는 현재도 바이올린 전공자나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푸냐니 스타일의 서주와 알레그로(Praeludium and Allegro)>를 비롯해 수십 곡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유명한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도 처음엔 고전 작곡가 디터스도르프의 곡이라고 속였다가 슬쩍 자기 이름으로 바꾼 전적이 있습니다.)
반전의 결말: 평론가들의 정신 승리
이 사실이 밝혀지자 음악계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30년 동안 "과거 거장의 숨결이 느껴진다"며 용비어천가를 불렀던 평론가들은 한순간에 사기극의 희생양이자 바보가 되었으니까요. 몇몇 평론가들은 "음악가로서 윤리적이지 못한 사기 행위"라며 격분했습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유쾌하게 받아쳤습니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음악의 아름다움이 변하나요? 평론가분들은 그동안 '이름'만 보고 음악을 들으셨던 건가요? 곡이 좋으면 그만 아닙니까."
이 한마디에 비판하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고백 이후에도 곡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여전히 이 곡들을 연주했고, 대중의 사랑도 식지 않았거든요.
결국 평론가들은 "30년 동안 속을 만큼 크라이슬러가 고전 스타일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 천재 작곡가라는 반증"이라며 태세를 전환해 정신 승리(?)를 거두었고, 이 사건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유쾌하고 성공적인 위작 해프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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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당시에는 비발디의 악보 수 백개가 창고에서 새로 발견됐다 ~ 하는 일들이 왕왕 일어나던 때여서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묻어 갔던 듯합니다.
사실 크라이슬러는 완벽하게 모작한 것도 아니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과거 작곡가들이 이런 곡들을 썼다 하면 사람들이 끄덕끄덕할 만하도록 대중과 음악계의 기대에 부응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