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20년간
서울에서는 1백만 세대 규모의 주거 공간이 새로 지어집니다
지금 서울 수도권에서 진행 중인
재개발 재건축만 세어 봐도 수백 곳이 넘어 보이고
다 합치면 1백만 세대에 이릅니다
저는 이 거대한 흐름이
서울을 점점 더 보수적인 도시로 만들 거라고 봅니다
먼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 글은 누구를 욕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집값에 미친 사람들을 비웃자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조금은 씁쓸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재개발로 새로 짓는 아파트는
보통 원주민 분양이 20~65%
일반분양이 20~40%
공공임대가 10~20% 정도로 나뉩니다(지역, 사업장마다 편차가 큽니다)
이 중 원주민은 당연히 시세가 오르길 바랍니다
몇 년씩 불편을 감수하고 이주와 재정착을 견딘 대가니까요
일반분양자는 더 절박합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인생을 건 빚을 지고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시세 하락은 단순한 손해가 아니라
인생 계획이 통째로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두 집단은 한목소리로
시세 상승을 바랍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세금 상승은 바라지 않습니다
집값이 오르는 건 내가 잘 고르고 잘 버틴 정당한 보상처럼 느껴지지만
거기 붙는 세금은 그냥 빼앗기는 돈처럼 느껴지거든요
내 자산 10억이 들어간 집이 15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자산을 지키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이게 흔히 말하는 보수화입니다
이념을 통째로 바꾸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냥 내 것을 지키고 싶어지는 본능에 가까운겁니다
나는 안 그렇다고요? 우리 진보는 다르다고요?
솔직히 저는, 저 자신도 안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 대부분에게 집은 자산의 거의 전부니까요
실제로 한국 가계는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주식이나 현금이 자산의 큰 몫을 차지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러니 집값은 곧 내 전 재산의 시세이고
전 재산이 출렁이는데도 마음이 안 흔들리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입니다
이건 누군가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겁니다
부동산에 관심 없던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서 누가 얼마 벌었다더라
친척 친구 지인의 아파트가 올랐다더라
하필 내 아파트 내가 들어갈 재개발 단지가 올랐다더라
이런 소식이 하나하나 쌓이면 누구라도 흔들립니다
이것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은 늘 주변과 비교하며 사는 존재라서 그런겁니다
이제 민주 진보 진영의 딜레마가 시작됩니다
진보가 말하는 정책들 보유세 강화 공공임대 확대 부동산 개혁에는 분명 명분이 있습니다
집을 자산 증식 수단이 아니라
사람 사는 곳으로 되돌리자는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문제는 1백만 세대로 불어날 이 새로운 유주택자들에게는
그 정책들이 내 전 재산을 건드리겠다는 신호로 들린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건 이미 한 번 겪은 일입니다
민주 진보 집권기에 집값이 크게 올랐을 때
사람들이 정권에 고마워했을까요? 아니요
집값 오르는 건 당연한 거라 여기고
늘어난 세금 때문에 민주 진보 정권이 오히려 원망의 대상이 됐습니다
덕분에 자산이 늘었다가 아니라 왜 내 돈을 가져가느냐만 남은 겁니다
반대로 보수 진영은 세금을 올리겠다는 말 자체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자산을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는 보수가 훨씬 더 안전한 선택지처럼 보입니다
서울에 재개발 된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1백만 이상 더 늘어나고
그들 대부분에게 그 집이 인생의 거의 전부라면
내 자산을 지켜준다는 쪽으로 표심이 쏠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20년
서울은 계속 보수화될 거라고 생각하고 확신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어떤 사람 자체가 나빠서가 아닙니다
내 전 재산을 지키고 싶은 게 죄는 아닙니다
다만 이 흐름을 직시하지 못하는 쪽이라면
앞으로 서울에서 점점 더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