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아무나 죽게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회복 가능성이 없고, 판단 능력이 있으며,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 국가가 ‘그래도 끝까지 버티라’고 명령할 권리가 있습니까?
먼저 용어부터 정확히 해야죠.
한국에서 현재 허용되는 것은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 중단, 즉 이른바 소극적 안락사에 가깝습니다.
반면 의사가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스스로 투여하는 의사조력자살, 그리고 의사가 직접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현재 한국에서 불법입니다. 이 구분도 안 하고 “살인 합법화다”, “무조건 존엄이다”라고 말하지 맙시다.
이미 한국 사회에서도 논의는 시작됐습니다. 22대 국회에는 2024년 7월 5일 안규백 의원 등 11인이 「조력존엄사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조력존엄사 제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84%,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7%였습니다.
이 정도면 더 이상 “극소수의 이상한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 없습니다.
물론 반대 논리도 가볍지 않습니다.
세계의사회는 생명 존중과 의료윤리를 근거로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에 공식적으로 반대합니다. 또한 의사가 이런 행위에 참여하도록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더라도 의사의 양심 거부권, 복수 의사의 판단, 독립 심사, 숙려 기간, 정신건강 평가, 가족·병원·보험사의 압박 차단 장치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반대하시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환자가 원치 않는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것은 존엄이고, 같은 환자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의 방식과 시기를 선택하겠다는 것은 왜 갑자기 “비윤리”가 됩니까?
죽음이 임박한 사람에게 “당신의 몸은 당신 것이지만, 마지막 고통의 시간표는 국가와 제도가 정한다”고 말하는 게 정말 존엄입니까?
해외 사례를 봐도 이 문제는 이미 현실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왔습니다. 캐나다에서는 2024년 사망자 중 5.1%가 의료조력사망을 받았고, 그중 95.6%는 자연사가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경우였습니다.
영국에서도 조력사망 법안은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막히며 2026년 6월 현재까지도 정치적·윤리적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건 철학자들끼리 책상에서만 하는 논쟁이 아닙니다. 이미 선진국들이 법과 제도로 부딪히고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한국에서 특히 조심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자살률 문제가 매우 심각한 나라입니다. 청년층 자살률도 높은 편이고, 한국 정부 통계 자료 역시 한국의 자살률이 OECD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나라에서 조력존엄사를 대충 도입하면, “고통받는 말기 환자의 선택”이 아니라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사회가 죽음을 권하는 제도”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조력존엄사는 금지할 문제가 아니라, 아주 엄격하게 설계해서 허용할 문제입니다.
금지한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금지하면 그냥 병상 위에서 더 오래 고통받거나, 가족에게 비밀로 하거나, 해외로 가거나, 더 위험한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