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영화를 누릴수 있었던 갈림길이 바로 국비유학 먹튀
국비로 의술 배우고 고국에 돌아온 다른 의사들은 먹고 살기도 힘들정도로 비참하게 감
당시 국비 유학 두명 중 한 분은 김익남이라는 분인데
같은 중인집안 출신으로 선배인 국비유학생 김익남은 대한제국군 의사로 있으며
후학을 양성하며 일제에 포섭요구 거절하다 일제가 면허를 안주니 결국 간도로 넘어가 개원해서 독립운동가와 한국인들을 치료.
자식은 하나 있었으나 폐결핵으로 죽고 대가 끊김. 후에 서울대의대에 동상 세워지고 이름을 남김.
안상호는 일제에 포섭되어 친일하며 개원도 하고 땅도 빼앗아가며 안양 최대부호가 되서 대대손손 부를 누림.
소작농들이 세워준 송덕비는 친일시설로 규정됨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