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 간의 거래 관계(B2B)에서 발생하는 성과를 사전에 합의된 규칙에 따라 나누는 ‘시장 내 공정 거래 모델’이다. 정부가 기업의 주머니를 털어 대중에 나누어주는 배급제가 아니다. 제품 생산과 혁신에 직접 기여한 파트너 기업에 합당한 보상을 정산해 주는 상생 계약인 것이다."
"이를 공산주의적 발상이라 비난하는 것은 경제사와 경영학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꼴이다. 초과이익공유제의 기원은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1920년대 미국의 할리우드다. 영화 제작사는 흥행의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을 줄이려고 감독, 배우와 ‘기본 출연료(개런티)는 낮추되 흥행 시 수익을 나누는’ 계약을 맺어 왔다. 그 후 크라이슬러나 롤스로이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 제도를 도입해 공급망을 관리해 왔다. 미식축구리그(NFL)에서는 이보다 더 나아간 수익공유제를 채택해 리그 전체의 공존과 번영을 도모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글로벌 플랫폼 시장을 주도하는 구글과 애플 역시 앱 생태계 내 개발자들과 이익을 분배하는 협력이익공유제를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이들이 공산주의 체재에서 움직이는 기업들인가."
"국내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이는 낯선 제도가 아니다. 적지 않은 기업들은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목표 이익 초과 시 성과를 나누는 ‘프로핏 셰어링(Profit Sharing)’ 제도를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했다. 사내에서 하던 이 제도를 협력사까지 넓히자는 주장을 두고,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우리 사회 일부의 정서는 시장경제의 진화 방향을 전혀 읽지 못한 결과였다. 자본주의는 탐욕을 방치할 때가 아니라, 절제하고 공존을 모색할 때 더 발전했다.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이나 『국부론』을 쓴 진의도 중상주의 시대 소수의 독점을 막고 부의 선순환을 유도하여 시장의 건강성을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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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대가들은 생태계의 강건함이 곧 지속가능성임을 명심하라고 경고한다. 대기업 경영진은 ‘호랑이는 작은 짐승을 잡지 않는다’는 상생의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기득권의 성벽에 갇혀 협력사의 고통을 외면하는 구조를 고수한다면, 대기업 자신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다. 언론 역시 정파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제도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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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인사로 분류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초과이익공유제 관련 칼럼을 썼네요.
민주당 러브콜을 거부하고 당시 '중도 보수' 포지셔닝으로 이명박 정권 시절에 국무총리를 하신 분인데다가, 몇몇 논란건들이 제 역린을 건드리는 것이 있어서 그리 좋게 보는 인사는 아닙니다만, 이번 논란에 대한 칼럼 내용이 어느 정도 제 생각과 결이 같아서 공유하고자 퍼 왔습니다.
약간의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이분이 대한민국 내 대표적 케인지언으로, 시장에 대한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라 이러한 칼럼이 나온 것이라 봅니다. 본문 중 '자본주의는 탐욕을 방치할 때가 아니라, 절제하고 공존을 모색할 때 더 발전' 이라는 문구가 이러한 관점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네요. 저도 이러한 관점에서 사측의 이익 독점을 구성원에게 나눠주는 삼성전자 쟁의를 응원했던 것이고, 다음 차례는 노동의 이중화에 따른 양극화 해소를 위한 원-하청 간 상생 방안 논의가 되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번 논란 시점과 형태에 있어서 노동부장관이 굳이 '초과이익' 이라는, 국민들에게 모호하고 낯설면서 여론에 군불때기 좋은 단어를 굳이 선거 직전에 써서 논란을 만들어야 했는지는 아직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특정 분야 호황에 따른 K자 양극화 해소 방안 마련' 등과 같은 훨씬 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쉬운 표현도 있는데 말입니다. 정무적 감각 어디에 두고 있는건지...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