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성향이 강한 분들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분위기를 좀 읽어라.”
“눈치가 없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듣는 T 성향의 분들은 당황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몰라서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왜 화가 났는지,
왜 서운해하는지,
왜 지금은 정답을 말하면 안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분명히 대화에 참여하고 있죠.
질문에 답했고,
사실을 말했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대는 더 상처받고, 대화는 더 어긋납니다.
T 성향의 분들에게 “공감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 추상적입니다.
“분위기를 읽어라”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위기란 무엇일까요.
공감이란 정확히 무엇을 하라는 뜻일까요.
상대가 틀린 말을 하고 있는데 왜 바로잡으면 안 되는 것일까요.
문제를 말했으면 해결책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요.
T 성향의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T 성향의 분들에게 F의 세계를 설명하려면
“공감”이나 “분위기” 같은 단어를 그대로 던져서는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 단어들은 F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바로 이해가 되었다면 T가 아니었겠죠.
T에게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번역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F의 삶을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입으로 대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두에게 바이올린이 하나씩 주어집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 상태, 상처, 기쁨, 외로움, 기대를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누군가 슬픈 선율을 연주합니다.
그 사람은 “나는 지금 힘들어”라고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낮고 느린 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연주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 옆에 있던 사람은 그 음악을 듣고 함께 연주합니다.
반드시 똑같이 슬픈 곡을 연주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슬픔의 결로 조용히 화음을 얹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더 따뜻하고 경쾌한 선율로,
슬픈 음악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조화입니다.
“네가 지금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지 들었어.”
“나는 그 음악을 무시하지 않을게.”
“내 음악을 네 음악 옆에 조심스럽게 놓아볼게.”
이것이 F의 대화입니다.
F에게 대화란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의 감정에 맞춰 음을 조율하는 일입니다.
상대가 어떤 선율을 연주하는지 듣고, 거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응답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T가 들어옵니다.
문제는 T가 바이올린을 거의 다뤄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음악을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대화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누군가 슬픈 곡을 연주하고 있어도,
T는 그저 “음, 슬픈 곡이군” 하고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어 합니다.
“왜 슬픈 곡을 연주하지?”
“그럴 거면 악보를 바꾸면 되잖아.”
“이 부분은 음정이 틀렸는데?”
“해결책은 더 빠른 박자로 넘어가는 거야.”
하지만 그 세계에서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음악으로만 대화할 수 있습니다.
F 성향의 사람들은 T를 바라보며 함께 연주하자는 신호를 보냅니다.
지금 들어오면 된다고,
이 선율 위에 당신의 음을 얹으면 된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같이 연주해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T는 그 신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박수를 칩니다.
혹은 곡의 구조를 분석합니다.
혹은 틀린 음을 지적합니다.
혹은 왜 이런 곡을 연주하는지 질문합니다.
T의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반응한 것입니다.
하지만 F의 입장에서는 대화에 참여한 것이 아닙니다.
박수는 연주가 아닙니다.
분석도 연주가 아닙니다.
지적도 연주가 아닙니다.
F가 원하는 것은 평가가 아니라 합주입니다.
그런데 T가 이 지점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T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자신도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말을 했고,
자신도 말을 했습니다.
상대가 어떤 상황을 설명했고,
자신은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해결책을 말했습니다.
그러니 T에게는 이것이 당연히 대화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착각이 있습니다.
정보 전달도 “말”로 하고, 감정 표현도 “말”로 한다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둘 다 같은 말입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고, 문장을 만들고, 상대에게 전달합니다.
그래서 T는 자신이 정보 전달의 말을 하고 있을 때도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F가 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정보 교환이 아닙니다.
F가 “나 오늘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오늘 있었던 사건을 보고하는 문장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 말은 감정의 선율에 가깝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상태야”,
“이 마음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
“내 옆에서 이 감정을 같이 느껴줄 수 있어?”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T는 그것을 정보로 듣습니다.
왜 힘들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누구의 잘못인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대답을 합니다.
T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상대가 문제를 말했으니 문제에 답한 것입니다.
하지만 F의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지금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상대는 악보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나는 같이 연주해주기를 바랐는데,
상대는 곡의 구조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선율 옆에 음 하나를 얹어주기를 바랐는데,
상대는 이 곡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T는 분명히 대화를 하고 있는데도, F의 대화 안에서는 겉돌게 됩니다.
이것이 T에게 “공감 능력”이나 “분위기”라는 말을 해도 잘 전달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 단어들은 너무 추상적입니다.
T는 자신이 이미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 공감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말이 아니라 음악으로 비유하면 훨씬 분명해집니다.
정보 전달의 말과 감정 표현의 말은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연주입니다.
정보 전달의 말은 사실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해결책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 감정 표현의 말은 선율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마음인지,
어떤 온도에 있는지,
어떤 리듬으로 흔들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T는 이 두 가지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선율이 시작된 자리에서 정보의 언어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F가 원하는 것은 그 순간만큼은 정답이 아닙니다.
해결책도 아닙니다.
분석도 아닙니다.
F 성향의 사람들은 그저 같이 연주하고 싶은 것입니다.
슬픈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그 곡이 왜 슬픈지 해설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슬픈 노래를 더 효율적인 곡으로 바꿔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 선율을 들었다는 표시를 해주고,
가능하다면 그 옆에서 어울리는 음을 조심스럽게 얹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F의 대화는 훨씬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공감이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분위기를 읽는다는 것도 초능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지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어떤 음악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같은 슬픔의 음을 낮게 얹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조금 더 따뜻한 멜로디로 받쳐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박자를 맞춰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음악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T에게 F의 삶을 이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보를 전달하는 말이고,
하나는 감정을 연주하는 말입니다.
F 성향의 사람들은 감정을 연주하고 있을 때,
당신이 정보를 분석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연주에 함께 들어와주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T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 지금 이건 문제 풀이 시간이 아니구나.
아, 지금 이건 사실관계 검증이 아니구나.
아, 지금 이 사람은 나에게 정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연주하자고 말하고 있는 거구나.
F 성향의 사람들은 결국 같이 연주하고 싶을 뿐입니다.
완벽한 답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한 위로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기 마음의 선율을 혼자 연주하게 두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박수만 치거나,
평가만 하거나,
악보를 고치려 들지 말고,
잠깐이라도 그 음악 안으로 들어와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F의 대화입니다.
그리고 T가 F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순간은,
대화가 언제나 정보 전달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때로 대화는 말이 아니라 음악입니다.
그리고 F 성향의 사람들은 그저 함께 연주하고 싶을 뿐입니다.
갑자기 생각난 비유로 한번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