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남학생 전용이었던 용산중학교
간혹 조선인 관료의 자녀들 몇 명도 다닐 순 있었음
심지어 일제가 조선어 탄압하고 강제로 전국민 창씨개명 시키던 1930년대 말~1940년대 아니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전부터 가족끼리 일본식 생활 + 일본어만 썼다고 밝힘
안상호가 죽을 당시에 장남은 용산중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나와 있음
본인들이 하도 신문 인터뷰에 입을 많이 털어서 증거가 차고 넘침
왜 하필 용산이냐?
관련 자료도 많은데 이 논문의 초록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해보면
이 글은 해방 이전 용산 지역 일본인 사회의 형성 및 변천의 과정을 군・관・민의 사회라는 규정 위에 공간을 중심으로 검토한 것이다.
(중략)
그럼에도 현재의 원효로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불법적인 거주는 시작되었고,
(중략)
러일전쟁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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