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남학생 전용이었던 용산중학교
간혹 조선인 관료의 자녀들 몇 명도 다닐 순 있었음
안상호의 장남이 이 학교를 다녔다고 함
4남 안부호(=소록도 근무했던 안하영 조부) 또한 일본인 학교에 다님
안부호가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도 일본 이름으로 메모해둠
무슨 멤버라는 거 보니깐 친구들끼리 사모임 같은 거인 듯
집안 사람들 다 창씨개명 해서 일본학교 다니게 했나 봄ㅋㅋ
심지어 일제가 조선어 탄압하고 강제로 전국민 창씨개명 시키던 1930년대 말~1940년대 아니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전(1910년대쯤)부터 이미 가족끼리 일본식 생활 + 일본어만 썼다고 밝힘
안상호가 죽을 당시에 장남은 용산중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나와 있음
본인들이 하도 신문 인터뷰에 입을 많이 털어서 증거가 차고 넘침
왜 하필 용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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