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잔(百殘)은 백제를 비하하는 표현, □은 지워져서 안 보임.
왜(倭)가 신묘년(391년) 이래로 바다를 건너와 백잔을 격파하고 □□ 신라를 쳐서 신민(臣民)으로 삼았습니다.
영락 6년 병신년(396년)에 왕께서 친히 수군을 이끌고 백잔(백제)을 토벌하셨습니다.
백잔이 의리에 복종하지 않고 감히 나와 맞서 싸우니, 왕께서 크게 노하시어 아리수(阿利水, 한강)를 건너 군사를 보내어 성을 압박하셨습니다. 백잔의 왕이 도망쳐 굴로 숨자 성을 포위하였습니다. 이에 백잔의 왕이 곤궁하고 몰려, 남녀 생구(포로) 1,000명과 가는 베(細布) 1,000필을 바치며 왕에게 항복하고 스스로 맹세하기를, "지금부터 이후로 영원히 노객(奴客, 신하)이 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태왕께서는 앞서 미혹했던 허물을 은혜로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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