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이후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이를 곧바로 '부정선거'라 단정 지으며 극단적인 음모론을 펼치는 이들의 행태를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투표율 예측 실패로 인해 투표용지가 부족해지고 투표가 지연된 것은 선관위의 명백한 잘못입니다. 유권자 수 100%에 맞춰 용지를 준비하는 것은 엄청난 자원 낭비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표 지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유발한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선관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합당한 형사적 책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투표용지가 추가 이송되었으나 정상 진행된 140개 투표소와 달리, 실제로 투표 지연이 발생한 26개 투표소에 대해서는 엄중한 문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극 공감합니다.
행정적 착오로 인해 투표권 행사에 불편을 겪었으니, 백번 양보해서 경기장 앞을 점거하고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까지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라 생각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들려오는 "사줘, 해줘, 와줘" 같은 어처구니없는 요구들과 지나가는 택배 박스를 무단으로 뒤적거리는 추태를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법을 집행해야 할 경찰마저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충돌을 피하려는 유약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시위대는 본인들이 무엇이라도 된 양 공권력마저 통제하려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오만함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국제대회를 앞두고 훈련 물품을 챙기려던 여자 핸드볼 주니어 대표팀 선수들을 가로막고 가방 검사를 강행한 행위는, 공익을 사칭한 불법 사적 제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수백, 수천 명의 성인이 자아낸 위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던 선수들 중에는 법적 미성년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민간 집단이 다수의 위력으로 미성년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고 소지품을 뒤진 것은 명백한
정서적 아동학대
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분노가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그것이 자라나는 미성년자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가방을 뒤질 권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일부 여론의 반응입니다. "학생들이 가방 검사에 친절하게 응했다"며 시위대의 행위를 미화하거나 두둔하는 댓글들을 보았습니다. 분별력 있는 성인들이라면 이것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소리인지 묻고 싶습니다. 압도적인 군중의 위력 앞에 겁에 질린 아이들이 거부하지 못하고 순응한 것을 두고 '친절하게 응했다'고 포장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자 가해자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궤변일 뿐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무고한 청소년들의 인권과 정신적 건강쯤은 짓밟아도 된다고 믿는 이 무법적 행태에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사법당국은 이 사안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미성년자들에게 위력을 행사하고 정서적 학대를 가한 주동자들을 반드시 찾아내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