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주의는 본래 코앞 이익에 눈멀어 품위도 의리따위도 잊는 것.
젖만 먹여주는 악마도 어머니라 부른다.
국익이나 공익과 같은 국민 공통의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한낱 천박한
장삿속만으로 치세할 순 없을 것이다.
옛말에, 빈천할 때 사귐은 잊는 게 아니고 불우할 때 헌신내조한 조강지처는
내치는 게 아니란 말이 있다.
토사구팽은 티끌세속의 논리지 지도자가 취할 모습은 아니다.
고대중국 춘추전국시대 종횡가 소진은 실용주의자로 이름 높아 6국의 재상이 되었지만
그의 끝은 반복무상한 배신의 아이콘이 되어 흉하게 죽었고,
조선 영정조 때 '탕평'이란 미명으로 실용주의가 구현됐지만 조선중흥은 미완에 그쳤다.
요즘 이통의 실용주의가 비틀거린다.
그의 바다적 포용론이나 오월동주논리가 잘 먹히지 않는다.
벌써 레임덕인가?